깐짜나부리 (Kanchanaburi)
깐짜나부리는 태국 서부의 읍(테사반 므앙)이자 깐짜나부리 주의 수도이다. 인구는 2002년 기준으로 885,112명이다. 므앙깐짜나부리 군에 속한다.
깐짜나부리는 쾌노이 강과 쾌야이 강이 합류해 매끌롱 강의 북쪽 기슭에 놓여있다. 산맥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태국 중부의 다른 주들에 비해 훨씬 시원하다. 도시에는 두 개의 주요 상업 지구가 있다. 도심 지역은 격자형으로 된 거리와 사무용 건물, 상점, 쇼핑몰이 있고 수변 지역의 업체들은 대개 쾌이 강 도로를 따라 훨씬 서쪽에 위치한다. 1년에 한번씩 읍의 다리 옆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밤에는 2차 대전 때 다리가 폭파된 것을 재연하는 작은 불꽃 놀이가 열린다.
깐짜나부리는 쾌노이 강과 쾌야이 강이 합류해 매끌롱 강의 북쪽 기슭에 놓여있다. 산맥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태국 중부의 다른 주들에 비해 훨씬 시원하다. 도시에는 두 개의 주요 상업 지구가 있다. 도심 지역은 격자형으로 된 거리와 사무용 건물, 상점, 쇼핑몰이 있고 수변 지역의 업체들은 대개 쾌이 강 도로를 따라 훨씬 서쪽에 위치한다. 1년에 한번씩 읍의 다리 옆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밤에는 2차 대전 때 다리가 폭파된 것을 재연하는 작은 불꽃 놀이가 열린다.
지도 - 깐짜나부리 (Kanchanaburi)
지도
나라 - 태국
태국의 국기 |
타이족은 약 11세기 즈음에 중국 남서부에서 동남아 반도로 이주해왔다. 이후 인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몬 왕국, 크메르 제국, 말레이 군주국들이 등장하여 현재 태국계 왕조인 수코타이 왕국, 란나 왕국, 아유타야 왕국과 경쟁을 별였다. 명사에 따르면 14세기말 원나라에 이어 명 태조가 섬라곡국(暹羅斛國)을 섬라국(暹羅國)으로 인정하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유타야 왕국의 시기인 1511년부터는 포르투갈인들과 만나며 유럽과의 교역을 시작하였고, 아유타야 왕국은 15세기 즈음에 전성기를 맞아 지역 강국으로 번성하였다. 허나 왕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1767년에 버마-태국 전쟁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탁신 장군이 왕국을 재통합하는 데에 성공했고, 단명한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탁신 장군은 폭정으로 신망을 잃었고, 현재 짜끄리 왕조의 시조인 풋타엿파쭐라룩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왕조는 현 국왕인 라마 10세까지 왕조를 이어오고 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
THB | 태국 밧 (Thai baht) | ฿ | 2 |